이미지와 환상
이미지와 환상, 다니엘 부어스틴 지음, 정태철 옮김 (The image: a guide to pseudo-events in America, Daniel Joseph Boorstin). 언젠가 동아리방에 들렀을 때 발견한 책. 흥미로워서 결국 도서관에서 빌려봤다.
저자(Daniel J. Boorstin)는 1960년대의 미국을 다루고 있지만 그 관찰들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그래픽 혁명”은 신문 인쇄 기술로 촉발되었더라도 그 본질은 이미지의 범람이기 때문이다. 다만 저자는 이미지(image)와 이상(ideal)을 대비시켜 이미지가 본질이 아니라 환상 또는 허상이라 일갈하였으나 다분히 역사학적의 관점에서 이상의 특정 형태만을 옹호한다는 느낌을 준다. 특히 이는 팝 아트, 디지털 아트 등 기존의 체제 – 미학 – 에 많은 도전이 있었던 예술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 책이 1962년에 출간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현재의 맥락에서 이러한 의미를 있어내는 것이 바로 독서를 통한 재 발견과 능동적인 독서가 아닐까.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어느 분야이든지 파고 들기 시작하면 철학적(philosophical) 또는 이론적(theoretical)인 분석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engineering의 art와는 또 다른 느낌.
뉴스 모으기가 뉴스 만들기로 – 가짜 사건의 범람
자연발생적인 사건이 부족하면, 인공적인 사건으로라도 보충해야 한다는 뉴스에 대한 이러한 태도 변화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태도는 물론 정보와 권력과 신문에 대한 태도를 바꿨다. 우리는 세상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요구하게 되었고 세상이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은 그 무엇을 조작해서 얻으려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환상에 대한 우리의 과도한 기대이다.
p. 31
영웅이 유명인사로 – 인간 가짜 사건들
영웅은 민속, 성스런 문헌, 역사책이 만든 산물이지만, 유명인은 이야깃거리, 신문, 영화와 TV 하면에서 덧없이 반복되는 이미지의 산물이다. 영웅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영웅이 되지만, 유명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름을 잃는다.
p. 99
여행이 관광으로 – 여행 본질의 상실
과거 여행자들은 능동적이었지만 현대 여행자들은 수동적이다. 과거 여행은 과격한 스포츠였지만, 오늘날 여행은 구경하는 스포츠다.
p. 130
여행자는 무언가 일을 하는 사람이고, 관광객은 무언가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 된다. 여행자는 능동적이다. 여행자는 사람과 모험과 경험을 열저적으로 추구한다. 반면에 관광객은 수동적이다. 관광객은 즐거운 일만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관광객은 구경거리를 보러(sight-seeing) 다닌다. 관광객은 모든 일이 자신을 위해서 자신에게 베풀어지기를 기대한다.
p. 130
쇼핑은 팁처럼 관광객 스스로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활동 중의 하나로 남아 있다. 쇼핑은 관광객과 방문 현지 국가를 갈라놓은, 사전 준비된 관광상품이란 벽에 뚫려 있는 조그만 틈이며 이 틈을 이용해서 관괭객은 현지인을 만날 수 있다.
p. 139
형태가 그림자로 – 와해되는 형태
진품 자체는 언제나 기술적으로 독보적인 지위를 누린다. 그러나 진품은 예술 작품의 대량생산에 쓰이는 염료나 책의 원판과 같은 하나의 기본형[대량으로 찍어내기 위해 공장에서 사용되는 틀, 역자 주]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우리들은 위대한 예술작품들의 원래 목적이 대량생산 공장의 복사품 기본형이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반면에, 민주주의적이고, 인문주의적이며,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원래 예술가들의 목적을 충족시켜주는 것은 진품이 아니라 복제품이 되어가는 것 같다. 우리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은 미술관에 있는 고흐의 진품 <해바라기>가 아니라 대학 강의실에 걸려 있는 복제품이다.
p. 183
이상이 이미지로 – 자기만족적 예언의 추구
우리가 인공적이라는 의미에서 ‘이미지’라는 말을 쓰는 경우는 눈으로 보는 이미지와 그 이미지를 가진 실체의 차이를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실체보다 더 좋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미지는 내부에 자리잡은 사적인 ‘성격’과 달리 눈에 보이는 공적(public)인 ‘개성’이다. … 공적인 이미지라는 말은 공적으로 보이기 위한 무언가가 이미지에 가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미지는 언제나 멋지게 다듬어지고, 수정되고, 개선되고, 개조되고, 향상되어서(완전히 원모습을 버릴 수는 없지만) 원래 자연적인 제모습과는 매우 달라질 수 있다.
p. 259
이미지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생활경험 속에서 ‘진실’보다 ‘신뢰성’이 더 중시되도록 영향을 미쳤다. 매디슨 애비뉴의 마술사뿐만 아니라 모든 미국 시민이면서 소비자인 우리들은 어떤 물건에 대한 광고에서 제시된 내용이 사실이냐는 것보다 그 광고가 믿을 만한 것이냐에 더 관심이 많다.
p. 292
그래픽 혁명은 세상 이미지를 극대화하고 더욱 생생하게 만들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 이미지가 우리 경험과 세상 윤곽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이미지는 오히려 세상을 희미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확실하고 뚜렷하게 장악하려고 만든 이미지가 오히려 우리를 희미한 세계로 유도하고 있다. 이것이 악마적[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성경에서 금지한 우상숭배와 같다고 보기 때문에 저자는 이를 악마적 소행으로 보고 있다, 역자주]인 자가당착적 모순이다. 우리는 이미지를 선명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우리가 겪는 경험을 희미하게 만들고 만다. 새로운 이미지는 전통적인 분별력을 희미하게 만든다.
p.292
미국의 꿈이 미국의 환상으로 – 위엄이란 자기 기만적 마술
20세기 미국인들은 자연스런 현실의 마지막 흔적까지 빼앗기는 것을 무기력하게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계획되지 않은 오아시스를 제공하는 사건을 만나면 두 배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 한 예가 범죄와 스포츠 뉴스에 대해서 미국인들의 열정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p. 345
권투시합의 승부가 조작되었다거나 아마추어 야구팀이 매수되었을 때, 사람들은 단지 도덕성이 무너졌다고 분개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몇 개 남지 않은, 계획되지 않은 현실에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긴 데 대해 분노하는 것이다.
p.346
통계라는 이름의 거짓말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원래는 다른 소셜 미디어와 UX와 관련된 책을 보러 갔는데, 지나가다 우연히 눈에 띈 책이 있었다 – 통계라는 이름의 거짓말 (Damned lies and statistics), Joel Best / 노혜숙 역. 뽑아 조금 읽어보니 흥미진진해서 아예 열람대에서 앉아 노트북 펴고 문장들을 옮기며 읽었다 – 적다 보니 너무 많아서 중간은 그냥 쭉 읽어나갔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 책은 사회 문제에 있어서 통계가 가지는 불완전성을 얘기하며 이를 잘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순진하거나 냉소적인 것은 도움이 되지 않으며 통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현상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통계학을 배우는 것 보다 이런 통계의 성질을 배우는 것이 훨씬 더 필요하다. 실제로 이 책은 어려운 계산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평균과 비율만 따질 수 있어도 된다.
또한 저자는 사회 문제가 형성되는 과정 중에 통계가 어떻게 이용되고 또 얼마나 오도되기 쉬운지 언급하고 있다. 주의할 것은, 저자도 언급하였듯이, 사회 운동가들이 비록 발기인으로서의 의욕과 신념으로 인해 많은 서툰 실수들을 저지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문제 제기를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꼭 읽어보길 권하는 책!
우리는 사회문제를 논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통계를 선택하고 제시한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p. 25
일반 대중은 새로운 사회문제에 대한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고, 사회통계에 대해 좀처럼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숫자는 확실한 사실처럼 보이기 때문에 대중매체는 통계 보도를 좋아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대중은 수긍을 잘하고, 보통 통계를 사실로 취급한다.
p. 26
우리는 때로 통계에 대해 바위처럼 움직일 수 없는, 완전히 사람들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사실처럼 이야기하고 마치 수석 채집가가 돌을 주워오는 것처럼 통계를 수집한다. 이것은 잘못이다. 모든 통계는 사람들의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다. … 모든 통계는 사회적인 산물이고, 사람들의 노력에 의한 결과이다.
p. 33
우리가 새로운 통계를 접할 때마다 해야 하는 세 가지 기본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누가 이 통계를 만들었나
… 창조자가 누구인지를 물을 때는 그 숫자를 만든 사람들의 이름보다는 통계와 관련된 그들의 역할에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
2. 이 통계는 왜 만들어졌나?
통계를 만드는 사람들의 정체를 알면 종종 그 동기를 알 수 있다. …
3. 이 통계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 모든 통계가 불완전하지만, 어떤 통계는 다른 통계를보다 훨씬 더 불완전한다. …
p. 34
운동가들은 새로운 문제가 크고 중요하다고 진지하게 믿기 때문에, 그리고 보고 되지 않거나 기록ㅚ지 않은 사례로 인해 아주 큰 암수[dark figure]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이 제시하는 추정값은 커지고 과장되기 쉽다.
p. 42
일단 어떤 숫자가 기사화되면 그 기사는 그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의 강력한 출처가 된다. 공무원들, 전문가들, 운동가들 그리고 다른 기자들이 그 기사에서 말한 숫자를 되풀이한다. 그 숫자는 그 자체의 생명력을 지니고 ‘숫자 세탁’을 거친다. 그 숫자가 누군가의 어림짐작이라는 사실은 잊혀지고 이제 계속 되풀이되는 과정에서 정확하고 신뢰할만한 당연한 사실로 취급을 받는다.
p. 43
사회문제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추측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우리는 문제의 실제 범위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근거 있는 추측 – 그리고 그것이 누구의 추측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면 – 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진짜 문제는 사람들이 추측을 사실로 취급하고, 그 숫자를 되풀이하고, 그것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를 잊어버리고, 거기에 덧칠을 하고, 그 선전과 방어에 혈안이 되고, 처음에 누군가의 추측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갖는 사람을 공격할 때 시작된다.
p. 46
우리가 통계를 사용할 때마다 필연적으로 일부 정보, 특히 복잡한 정보가 유실된다.
p. 176
비판형이 되려면 단순히 어떤 통계의 결함을 지적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통계는 결함이 있다. 문제는 어떤 특정한 통계의 결함이 그 유용성에 흠이갈 정도로 심각하냐는 것이다.
p. 176
덧. Tumblr에도 올림.
소통에 대한 생각
얼마전 동아리 게시판에 올린 글.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소통의 방법에 대한 세밀한 조정은 소통의 장벽을 높일 뿐이며, 소통 부족의 원인을 여러 맥락에서 보고 조금 서툴더라도 이를 극복하려는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 요지.
합창단에서의 소통에 대한 생각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재학생 게시판에 국한되어 쓴 이야기가 아님을 밝힙니다.
강요에 대하여
전 ‘강요’와 ‘비합리적인 주장’이 구별되면서도 상당한 연관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강요’는 논리와 상관 없는 별도의 압력을 가하는 것이라고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대로 된 논거 없이 ‘다들 이렇게 생각한다’라는 부적절한 논거를 제시하는 것 자체가 ‘강요’는 아닙니다. 하지만 청자가 ‘다수의 의견에 일치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문화적 배경이 ‘강요’를 구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는 ‘학번’이라는 나이에 의한 권위가 있겠습니다. 고학번이 의견을 제시하면 이를 반박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한국적인 문화를 감안하면, 고학번이 말하는 것 자체가 강요가 될 수 있겠지요.
또는 사람에 따라 수사의 차이를 다르게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강요, 주장, 피력…)
- 1) 투표를 하지 않으면 민주 시민의 권리를 포기하는 잘못된 일이다
- 2) 투표를 하지 않으면 민주 시민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요
- 3) 투표를 하지 않으면 민주 시민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분히 이런 논리와 상관 없는 청자에게 발생하는 효과를 노리고 화자가 전략을 쓰기도 하는 것이 사실인데, 이를 ‘강요’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애초부터 한국의 문화 배경이 애초부터 논의를 상당히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어떻게 하든 ‘강요’라고 느낄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봅니다. 화자는 이를 피해야하고 청자는 이를 타파해야겠지요.
반면 상대적으로 소통이 부족한 냉소주의가 만연하는 한국 사회를 생각한다면 화자 역할을 하는 이가 서툴더라도 좀 더 많아지고, 이를 견제할 다른 화자가 등장하거나 청자의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 저는 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터의 이야기 주제에 대하여
사실 많은 커뮤니티에서 정치 이야기가 금기시 된 것은 논의로 인해 친목을 해칠 만큼(?) 분란이 일어나고 정치 이야기만 활성화된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 친구끼리는 정치 이야기를 안하는 것과 비슷하죠?
합창단 게시판인데도 연습이나 공연에 대한 생각들이 잘 오고가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죠. 말하면 서로 속상할까봐 아닙니까?
그런 암묵적인 규칙이 존재했던 것이고 – 이야기터든 오프라인에서든 (뒤풀이) – 가끔 이에 반하는 일이 일어나고 조용히 묻혀가고…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고 봅니다.
제 생각은, 솔직히 재미 없습니다.
제가 보는 합창단의 가장 큰 장점인 다양한 배경과 생각을 가진 이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갈수록 발현되지 않는 것이 아쉽습니다.
좀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기 위해 게시판 시스템이 개선될 필요도 있지만, 아무리 그렇게 바뀐다해도 이 커뮤니티[합창단]가 애초부터 서로 이야기 하지 않는 분위기라면 소통 활성화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저는 이야기터가 각종 알림성 글로만 남은 소극적인 공간보다는, 다양한 주제로 치고 박고 때로는 마음 상하고 직접 얘기하며 이를 풀기도 하는, 그런 모습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게시판을 나눌까 하는 고민이 생길 정도로.
DEVONthink를 이용해 늘어가는 자료 정리하기
여러가지 정보 조각을 관리하는 것은 골치가 아프다. 구입 기록, 제품 매뉴얼, 시스템 관리 스크립트, 연구 주제와 아이디어, 블로그할 글 조각들, 스크랩한 웹페이지, 각종 서류, 발표 자료… 연도 별 또는 용도 별로 폴더를 만들어 나누어 관리하고, 지난 것은 압축해서 보관하는 등 여러 방법을 시도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맥으로 넘어온 후에 그동안 Journler를 여러 문서와 생각들을 기록하는데 쓰고 있었다. smart folder1 를 지원하고 바로 녹음해서 저장할 수 있는 등 개인 기록 관리에 있어서 충분한 기능을 제공했다.
하지만 최근 개발이 중단되었고, 여러 종류의 파일을 우겨 넣어서 한꺼번에 관리하기에는 조금 맞지 않았다. 그래서 대안을 찾아보고 선택한 것은 DEVONthink.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파일 종류를 인식한다는 점이다. 미리보기도 빠르고 검색도 잘 된다. 또한 CSV 파일은 직접 편집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점도 매우 편리하다. 예를 들면, 내가 갖고 있는 기계의 IP 및 맥어드레스 목록과 같이 정해진 필드가 있는 자료들을 정리할 때, 굳이 다른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또다른 장점은 여러 개의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기록용으로 모아둔 예전 자료들은 ‘Archive’ 라고 이름 붙인 데이터베이스에 넣어두고 외장하드에 놓거나, 기본으로 열리지 않도록 설정하면 편리하다. 너무 자잘하게 나누면 또 복잡하겠지만.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내용 기반 자동 분류 기능]은 아직 별로 사용해보지 않았다. 한글 자료가 더 많아서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 나중에 논문들을 Papers에 넣고 인덱싱만 DEVONthink를 이용하면 유용할 것 같다.
아직 많은 기능은 써보지는 않았지만2 전체적인 완성도 등 상당히 만족스럽다. 이제는 정리한 것에서 시너지를 뽑아내야할 때!
관련 자료
- DEVONthink + markdown syntax 사용하기
- Seamless integration of Papers and DEVONthink
- DevonThink : 자료정리 1차 완료 by demitrio
다른 자료 관리 프로그램
Information Science 석사 과정 유학 결정
UC Berkeley School of Information의 Master of Information Management and Systems (MIMS) 어드미션을 받았다.
computer science & engineering 학사, 석사를 하면서 느낀 아쉬운 점을 채우고자 다른 학문으로의 확장을 꾀했었다. 컴퓨터와 더불어 ‘사람’에 초점을 두는 Human-computer interaction (HCI), 정보의 유통과 관련된 Communication, Journalism 등 여러 분야를 두고 고민했다.
거시적인 process & mechanism에 관심이 많고 meta 학문에 관심이 많다보니 너무 많은 분야를 두고 고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고민하고 조언을 들으며 “어디서 시작하는가는 물론 중요하겠지만, 어디를 선택하든지 방향은 열려있고 내가 선택하기 나름이다”라는 결론을 내고, 나의 배경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지는 않되 학제간의 연구가 활발한 분야를 고르기로 했다. 그 결과가 바로 information science.
information science는 말 그대로 “정보를 다루는 과학”이다. 예전에는 도서관이 information의 보고였으므로 library science에 보통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컴퓨터와 인터넷이 등장하여 정보 교환 및 활용 방법이 다양해짐에 따라 이를 다루기 위해 확장되어 information science가 성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1
유학 이외에 한국에서 공부를 계속하는 것도 고려해봤으나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보통 한국의 학제간 연구는 쉽지 않다. 게다가 hot하고 응용과 가까운 가능한 HCI나 Semantic Web의 현재 위치를 생각해보면, 더 폭넓고 일반적인 분야를 다루는 information science는 입지가 더 좁아보인다. 물론 응용 분야에 따라 informatics나 information management는 자리잡은 경우도 있으나2 meta 학문을 위한 학제간의 연계는 한국의 대학 문화/풍토에서는 여전히 쉽지 않다. 이 점을 바꾸고자 노력하는 분들도 적지 않고 그 과정을 함께 하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으나, 지금 당장 뛰어들기보다는 내가 더 준비하고 돌아와 보태는 것이 낫다고 봤다.
2008년 여름, 석사 졸업 이후 이렇게 유학을 결심하고 분야를 결정한 후 2009년 가을학기를 목표로 여러 학교에 지원을 했으나 어느 곳의 합격 통지를 받지도 못했다. 처음에는 좌절했으나, 1년간 여러 경험을 보태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았다. 웹 벤처 참여, UCB Summer Sessions 경험3과 미국 여행, 그리고 더 보고 더 읽고 더 생각하고 더 느끼기.
그 결과 2010년 가을학기 어드미션을 가장 가고 싶었던 UC Berkeley의 iSchool에서 받게 되었다. Indiana University, University of {Michigan, Maryland, Washington} 에서도 어드미션을 받았으나 UCB를 선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Silicon valley 근처라는 지리적 이점 2) library science의 테두리를 적극적으로 넘어선다는 점 3) 너무 번잡하지도 한가하지도 않고 아름다운 날씨의 매력.
이제 시작이다!
덧.
적고 보니 올해 첫 블로그 글이다. 앞으로는 좀 더 여러 주제의 이야기를 쓸 참이다.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것을 꺼려왔지만, 나의 일부분을 드러내는 글들이 읽는이와의 접점은 대개 어딘가에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 실제로 UCB iSchool은 다음과 같은 변화를 거쳤다: School of Librarianship (1926) – School of Library and Information Studies (1976) – School of Information Management and Systems (1994) – School of Information (2006) [↩]
- 의료정보학, 경영 정보학과 경영 정보 시스템 [↩]
- 수강 과목: History of Information from iSchool, Introduction to Social Theory and Cultural Analysis from Interdisciplinary Studi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