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에 대한 생각
얼마전 동아리 게시판에 올린 글.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소통의 방법에 대한 세밀한 조정은 소통의 장벽을 높일 뿐이며, 소통 부족의 원인을 여러 맥락에서 보고 조금 서툴더라도 이를 극복하려는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 요지.
합창단에서의 소통에 대한 생각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재학생 게시판에 국한되어 쓴 이야기가 아님을 밝힙니다.
강요에 대하여
전 ‘강요’와 ‘비합리적인 주장’이 구별되면서도 상당한 연관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강요’는 논리와 상관 없는 별도의 압력을 가하는 것이라고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대로 된 논거 없이 ‘다들 이렇게 생각한다’라는 부적절한 논거를 제시하는 것 자체가 ‘강요’는 아닙니다. 하지만 청자가 ‘다수의 의견에 일치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문화적 배경이 ‘강요’를 구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는 ‘학번’이라는 나이에 의한 권위가 있겠습니다. 고학번이 의견을 제시하면 이를 반박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한국적인 문화를 감안하면, 고학번이 말하는 것 자체가 강요가 될 수 있겠지요.
또는 사람에 따라 수사의 차이를 다르게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강요, 주장, 피력…)
- 1) 투표를 하지 않으면 민주 시민의 권리를 포기하는 잘못된 일이다
- 2) 투표를 하지 않으면 민주 시민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요
- 3) 투표를 하지 않으면 민주 시민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분히 이런 논리와 상관 없는 청자에게 발생하는 효과를 노리고 화자가 전략을 쓰기도 하는 것이 사실인데, 이를 ‘강요’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애초부터 한국의 문화 배경이 애초부터 논의를 상당히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어떻게 하든 ‘강요’라고 느낄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봅니다. 화자는 이를 피해야하고 청자는 이를 타파해야겠지요.
반면 상대적으로 소통이 부족한 냉소주의가 만연하는 한국 사회를 생각한다면 화자 역할을 하는 이가 서툴더라도 좀 더 많아지고, 이를 견제할 다른 화자가 등장하거나 청자의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 저는 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터의 이야기 주제에 대하여
사실 많은 커뮤니티에서 정치 이야기가 금기시 된 것은 논의로 인해 친목을 해칠 만큼(?) 분란이 일어나고 정치 이야기만 활성화된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 친구끼리는 정치 이야기를 안하는 것과 비슷하죠?
합창단 게시판인데도 연습이나 공연에 대한 생각들이 잘 오고가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죠. 말하면 서로 속상할까봐 아닙니까?
그런 암묵적인 규칙이 존재했던 것이고 – 이야기터든 오프라인에서든 (뒤풀이) – 가끔 이에 반하는 일이 일어나고 조용히 묻혀가고…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고 봅니다.
제 생각은, 솔직히 재미 없습니다.
제가 보는 합창단의 가장 큰 장점인 다양한 배경과 생각을 가진 이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갈수록 발현되지 않는 것이 아쉽습니다.
좀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기 위해 게시판 시스템이 개선될 필요도 있지만, 아무리 그렇게 바뀐다해도 이 커뮤니티[합창단]가 애초부터 서로 이야기 하지 않는 분위기라면 소통 활성화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저는 이야기터가 각종 알림성 글로만 남은 소극적인 공간보다는, 다양한 주제로 치고 박고 때로는 마음 상하고 직접 얘기하며 이를 풀기도 하는, 그런 모습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게시판을 나눌까 하는 고민이 생길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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